Chapter 43
1.
골콩트는 말했다.
나의 존재가 이야기의 구성을 비틀었다고.
개념을, 맥락을 잃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나라고.
무슨 의미였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만들어낸 변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본격적인 원작이 시작되기 이전에 내가 바꿔놓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본래 있어선 안되는 변수.
원작의 이야기를 비틀어버리는 이상(異常).
그런 의미로만 생각했었다.
더 나아가자면 골콩트가 추구하는 이야기를 망쳐버린 주범, 그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게, 말이 돼?”
이후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고 내가 내린 감상이다.
실제로 이제부터 펼쳐질 일은 그야말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말도 안되는 현상이었기에.
이 세계의 장르와 걸맞지 않은, 그야말로 맥락에서 벗어난 현상.
골콩트가 말했던 이야기의 구성을 뒤흔든 사건.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2.
솔직히 말해, 간단한 의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C&C와의 협업이었으니까.
밀레니엄 최강인 네루와 함께 싸운다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녀들 모두 실력이 뛰어났었기에.
유능한 동료, 상승한 경지, 승리에 대한 확신.
그 모든 것들이 갖춰진 상황에서라면 그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리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는 확신이었고, 동시에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C&C가, 그리고 내가 지닌 실력은 뛰어났다.
우리들은 강했고, 적들은 약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밀레니엄의 특작부대인 C&C가 건물 내부의 누군가에게 패배한다거나.
설령 네루가 외부에 있었다고 해도 아스나를 비롯한 세 사람은 전투에 있어서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들이 패배할 일은 그다지 없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아스나, 내부 상황 보고해라. 아스나?”
“카린 선배?”
“아카네! 안쪽에서 뭔 일이 일어난거냐고!”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불과 십여분 가량이 흐른 현 시점에서, 건물 내부로 진입한 아스나 일행의 통신이 끊겼다.
심지어 아스나를 비롯한 카린, 아카네마저도 동일하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에 네루와 내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과대해석일지 모른다. 전파를 방해하는 장치라도 내부에 설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통신을 진행하기엔 너무 바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순간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선배.”
“어.”
“안쪽에 이상한게 있는 것 같습니다.”
건물 내부에, 나의 초감각으로도 쉬이 짐작하기 힘든 존재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찬가지로 불길함을 느꼈는지 네루는 이전과 달리 한없이 굳은 표정으로 건물의 정문을 노려봤다.
“그게 뭐든 상관없잖냐. 적이면 부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네루가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설령 정말로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더라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적과 싸우고, 승리한다.
이거면 충분했다.
“가자고!”
“가시죠.”
우리 둘은 동일한 순간 발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목표는 정문. 더 나아가 안쪽의 적들.
돌진해서 문을 부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든 우리는 그 상태로 정문에 닿았-
콰앙─!
아니, 닿으려고 했다.
우리와 동시에, 혹은 그보다 먼저 정문을 박살내고 튀어나온 누군가가 없었다면 말이다.
“뭐, 뭐야?!”
“……!”
거대한 가구라도 날아오는줄 알고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문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체구의, ‘죄수’가 말이다.
[하하하하! 아쉽군, 아쉬워! 땅꼬마 녀석을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통쾌하고 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분명 여성의 것이었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괴악함은 뒷골목에서 찌든 조직 폭력배를 연상케했다.
“뭐하는 새끼야, 이거?”
네루는 갑작스레 정문에서 튀어나온 존재를 향해 당황스러운 시선을 보냈으나, 뒤이어 정문에서 녀석을 따라나온 상처투성이의 부원들을 보고 경악했다.
아니, 경악을 넘어 들끓는 분노를 느꼈다.
“……리더! 벌써 바깥은 정리 끝났구나?”
“리더, 오셨군요.”
“미안해, 리더. 처리하지 못했어.”
그녀들의 몸 곳곳에 난 상처. 그것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빨을 뿌득, 하고 갈은 네루의 표정은 이내 건물 바깥으로 뛰쳐나온 녀석을 향했다.
주황색의 교정국 죄수복.
거대한 체구와 걸맞은 선이 굵은 얼굴.
그리고, 전신을 뒤덮은 코뿔소 모양의 강철 슈트까지.
참 괴랄한 모습이라고, 네루는 생각했다.
“…저 자식이냐?”
[그래! 내가 저년들을 모두 묵사발로 만들었지!]
“…….”
[유명하신 C&C 나리들도 내 슈트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할 뿐이시구만, 그래? 크하하하!]
“이, 개같은……!”
녀석의 도발에 당장이라도 달려드려던 네루였지만, 이내 누군가가 뻗은 손에 제지되었다.
그것은 바로 히이로, 자신의 후배였다.
“야, 후배. 지금 뭐하는-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후배에게 분노의 화살이 튀려고하던 순간이었으나, 네루는 히이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들끓던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음을 느꼈다.
왜냐하면,
후배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했으니까.
새파란 것을 넘어 새하얘질 정도로.
마치 이 세상에 있어선 안될 것을 보았다는 듯한 얼굴. 비유하자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이내 네루는 히이로에게 물었다.
“야, 야. 무슨 일인데?”
“……시발.”
“뭐? 너 이 새끼, 왜 갑자기 욕을-”
“왜 라이노가 여기에 있는거지……?”
“……그게 뭔데?”
“여기에 저 녀석이 있으면 안되는거잖아. 근데 왜-”
라이노?
대뜸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네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 뿐만이 아닌, 주변에 있던 C&C 전원이 그러했다. 갑자기 히이로의 상태가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히이로는 신경쓰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 말이, 이런 의미였나? 이야기의 구성을 비틀었다는 말이 비유가 아닌 진짜 그대로의 의미였다고?”
“……히로 쨩?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흥분한거 같은데, 잠시 진정을- 아?”
“야 임마, 히이로!”
“안돼! 녀석한테는 공격이 안먹-!”
그녀들이 히이로를 붙잡고 말리려던 순간, 히이로는 갑자기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따라잡기도 힘든 속도로, 전력을 다해서.
그 경로에는 아스나 일행을 고전시켰던 코뿔소 슈트를 입은 죄수가 있었다.
경악하며 히이로에게 소리친 그녀들이지만, 히이로는 멈추지않고 녀석을 또렷히 직시하였다.
[하! 이번엔 흰둥이 네가 상대하는거냐?]
“장르가 바뀌었다? 내가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제정신이 아닌가보군. 그럼 내 주먹으로 그 정신을 일깨워주마!]
죄수가, 히이로의 표현대로는 라이노가 무슨 말을 꺼내든 히이로는 그저 말을 이을 뿐이었다.
“저 녀석이 내가 생각하는 녀석이 맞다면.”
“정말 이 상황이 내가 예상하는 상황인거라면.”
이는 결의였고, 동시에 신념이었다.
“내가 막아야한다.”
그리곤,
라이노와 거리가 가까워졌을 순간.
히이로는 놈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콰아앙─!!
거센 충격이 일었다.
일반적인 전차나 학생이라면 기절했을 일격.
그 정도의 힘이 담겨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크흐흐…! 꽤나 아프긴 하는군! 하지만 부족하다!]
“시발.”
놈은 약간의 고통만 호소할 뿐, 멀쩡했다.
그 모습만으로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우려하던 그 상황이구나.
정말로…….
“진짜 라이노라고……?”
이 세계의 장르가 뒤틀리고 말았구나.
그 사실을 실감하였다.
2.
생각해보면 기이한 조합이었다.
불량배, 헬멧단, 그리고 용역까지.
본래 각자의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그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지지 않는다.
이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라는 목적으로 밀레니엄 세미나의 표적이 될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다.
금융 네트워크를 점유해서 흘러나오는 잉여 자금이 막대하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자신의 인생 전부를 베팅할 수준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 적지 않은 세력들의 인원 모두가, 무슨 이유로 이번 일을 벌이게 되었는가.
이는 C&C의 멤버들도 품는 의문이었다.
심지어 전투를 이어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손쉬웠기에 그 의문은 더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고.
무언가 배후가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나였으나.
드러난 진상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 C&C와의 협업이라고만 생각했던 이번 의뢰가, 키보토스 전체를 뒤흔들 사태의 전조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으니까.
장르가 뒤바뀌었다.
기존 구성이 무너지고, 개념이 뒤틀렸다.
그 의미를 인지하고 깨닫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초감각이 격렬하게 반응하였다.
“……시발.”
당연하게도 욕이 튀어나왔으나, 혼란스런 상황이었기에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하하하하하─!!]
이 상황이 현실임을 알려오는 웃음 소리만 들려왔다.
기잉- 하면서 움직이는 거체가 육중한 소리를 내자 지면에 진동이 울려퍼진다.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가 없는, 그저 자신의 욕망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
그곳에 있는 것은 이미 하나의 ‘빌런’이었다.
[그 무엇도 나를 쓰러트리지 못한다!]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통쾌한 목소리.
실제 ‘라이노’가 세상에 떨어졌다면 저런 모습일까.
외형은 여성이었으나, 그녀를 구성하는 모든 본질적인 부분이 히어로물 속에 드러났던 라이노와 기이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마치, 키보토스 속 인물에게 내가 알던 라이노라는 인물의 설정이 대입되버린 느낌이랄까.
어째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여러 궁금증이 생겨났지만 지금은 무시했다.
이 세상의 장르가 내 존재로 인해 변화했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순간이었으니까.
그게 내 역할이자, 사명이지 않은가?
[호오, 아직도 싸울 생각이냐?]
“그래야지.”
[쯧쯧. 멍청한 놈이구나! 내 슈트는 그 어떤 총알도, 폭탄도 통하지 않는다! 너의 선배들마저 나에게 패배했는데 너같은 애송이가 나에게 덤비겠다고?]
크하하하!
원작과 마찬가지로 멍청한 웃음을 흘리는 녀석.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놈에게 말했다.
“혹시 너 이름이 알렉세이냐?”
[하! 내 이름은 그런 괴상한 이름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
이걸 순순히 대답해주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원작의 라이노와 마찬가지로 다소 멍청해보이는 모습, 거기다 다혈질적이며 자만심이 높고, 누군가를 조롱하길 즐겨하는 모습이었다.
“원래는 다른 역할로 와야겠지만…….”
원작대로라면 라이노를 쓰러뜨리는 역할은 스파이더맨이다. 키보토스에선 실크가 그 역할이 되겠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실크로 다시 찾아올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지금은 캡틴의 역할로 대신해야겠지.
“그걸로 만족해라.”
[하?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멍청한 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여기서 말을 끊어내고 나는 순식간에 몸을 가속시켜 라이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방패를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달라질건 없다는 이야기다.”
콰아아아앙─!!!
방패가 라이노의 턱으로 꽂혀들어가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울려퍼졌다.
충격에 떠밀려 뒤로 넘어가는 라이노. 그리고 어떤 공격에도 멀쩡하던 슈트의 얼굴 부분이 쩌적- 하고 금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히이로는 말했다.
“이 세계의 장르가 ‘슈퍼히어로’로 뒤바뀌었다면, 당연한 이야기니까.”
그 어떤 변수가,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영웅은 승리하고, 빌런은 패배한다.
그게 이 장르의 보편적인 명제였으니까.
3.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이란 그런 존재다.
불합리하고, 편의적이며, 더 나아가 작위적인.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겨내며, 끝내 자신의 목표를 완수하는 존재가 바로 주인공. 세계의 중심.
주인공이 실현하는 바는 세계의 구성이 되고,
주인공이 목표하는 바는 세계의 주제가 되며,
주인공의 서사는 곧 세계의 장르로 결정된다.
그 행적이야말로 곧 이야기이자, 세계의 역사다.
비극적인 과거, 드높은 목표, 들끓는 감정, 인간관계, 대적자, 감춰진 비밀, 예언가, 그리고 승리.
그러나 본래 예정된 텍스트는 아주 사소한 변수만으로도 변화하며, 이야기의 구성과 주제 또한 마찬가지로 사소한 문장 하나로 변화를 맞이한다.
이야기란, 텍스트란 본래 그러한 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모든 텍스트가 뒤틀릴 정도로 큰 변화를 맞이한 세상은 어떻게 변동되는가.
본래 한 문장조차 지니지 못했을 조연이, 자신의 이름과 서사, 그리고 비밀을 갖추게 된다면.
이야기의 시작 이전에 주인공보다도 더 화려한 행적으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어떠할까.
세계는, 이 이야기는.
과연 새로운 변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 해답은 이미 이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이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변하고 말았군요.”
세계는 변화한다. 주인공에 의해.
마치 도화지에 붓을 칠하듯 새로운 설정이 삽입된다.
기존의 것과 동화되어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초인. 괴물. 그리고 영웅. 단순하지만 강렬한 기호들의 집합이군요. 그것이 당신이 만든 새로운 장르로군요. 이름 없는 영웅.”
장르가 더해진다.
학원과 청춘, 밀리터리와 하이틴이라는 장르의 위로.
새로운 장르, ‘슈퍼히어로’가 더해지는 모습.
참 놀랍기 그지없다. 골콩트는 그리 평했다.
“흥미로운 광경입니다. 과연 저 기호들에서 당신이 보여줄 텍스트가 무엇인지, 기대가 되는군요.”
[그렇다!]
이제 새로운 주인공이 된 소녀.
그녀의 은유이자 메타포. 그리고 텍스트.
골콩트의 관심사는 언제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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