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5
마지막까지아서와눈을맞추던릴리스는눈깜짝할사이에우주공간으로날아갔다.
인간의기준으로는머나먼거리에있는토성이지만,이미차원을넘나드는수준인릴리스에게토성은엎어지면코닿을거리였다.
토성의고리를넘어행성표면에도착한릴리스는얼굴을살짝찌푸렸다.
사방을휩쓰는폭풍과지구의것과는비교도안되는거대한번개.
표면에서요동치는액체의파도는이미쓰나미라불릴수준이었다.
인간들이본다면지옥이라묘사할정도로극한의환경이었다.
“…도대체왜이런곳에서사는거지?”
먼친척의취향이도통이해가가지않는릴리스였다.
폭풍속에들어간릴리스는잠시주변을살피며기억을되살렸다.
“…이쪽이었나?”
갑작스러운번개가릴리스를내려쳤지만,그녀는털끝하나그을리지않고멀쩡했다.
폭풍의거센바람도릴리스의움직임을막지못했다.
공중을떠다니던릴리스의시야에무언가가잡혔다.
“찾았다.”
릴리스는순간이동으로곧장그곳에다가갔다.
릴리스가본것은하나의섬이었다.
다만결코평범한섬이아닌,허공에떠있는부유섬이었다.
토성의바다는파도가너무거세어일부러공중에자리를잡은것이다.
부유섬은폭풍으로부터내부를보호하기위해반구형막이쳐져있었다.
그막을가볍게통과하여들어가자-
삐익!삐익!삐익!
시끄러운경고음이울려퍼졌다.
그러자릴리스가디딘땅바닥아래서부터무언가올라오기시작했다.
끈적한검은점액질이꿈틀거리며땅에서솟아났다.
그것들은릴리스의키를넘어위에서부터그녀를덮치려했으나,
“어딜감히!”
릴리스의손짓한번으로갈기갈기찢겨져사방으로날아가버렸다.
그럼에도다시뭉쳐져서달려드는덩어리들이었지만,아예보호막을만들어버린릴리스에게접근할수는없었다.
“내몸을만질수있는건아서밖에없어.”
릴리스는당장에라도점액질들을소멸시켜버리고싶었지만,이덩어리들이차토구아의봉사종족이라는것을알고있었기때문에일단은내버려두기로했다.
경보음이계속울리자부유섬의주민들이하나둘다가왔다.
그들은현재의지구에는소실된고대언어로저들끼리수군거렸다.
“침입자다!”
“폭풍의바다를넘어오다니.무슨종족이지?”
“겉모습은인간같은데?”
“와…엄청난미녀…”
“저런사람이무슨일이지?”
주민들의외향은제각기달랐다.
평범한인간의모습이대부분이었으나,
개와인간이섞인모습이라던가,
이족보행을하는개미라던가,
아예꿈틀거리는촉수덩어리도있었다.
좋게말하자면개성넘치는외형이었고,나쁘게말하자면기분나쁜모습들이었다.
그런주민들을제치며달려오는사람이있었다.
밤색머리와턱수염을멋들어지게기른중년의남자였다.
“지나가겠네…좀비켜주게…다리,아니촉수좀…”
그남자를본주민들은화들짝놀라며사방으로비켜섰다.
“대마법사다!”
“대마법사님?당신이어째서…”
대마법사라불린남자는헐레벌떡뛰어서릴리스의앞에도달했다.
“그만!그만해주십시오,형태가없는자손들이시여.그분은저희주인님의손님입니다!”
대마법사의말에검은덩어리들은꿈틀거리기를멈췄다.
이내천천히가라앉더니땅에도로흡수되었다.
보호막을내린릴리스가대마법사를쏘아보았다.
“여긴손님맞이가과격하네?”
그러자대마법사는고개를푹숙였다.
“죄,죄송합니다.부디노여움을풀어주시길…”
그의태도에주민들이수군거렸다.
“대마법사님이저런태도를보이다니?”
“도대체뭐하는사람이길래?”
“대마법사가굽혀야한단말이야?”
그런수군거림에도아랑곳하지않은대마법사는고개를들지않았다.
그런중년의남자를흘겨보던릴리스는한숨을내쉬었다.
“됐어.자동으로움직인걸텐데그걸로시시비비를따지는것도귀찮아.”
“관대한처사에감사드립니다,밤의여왕이시여.”
“차토구아는?”
“그게…”
말끝을흐리는대마법사의태도에릴리스는알만하다는듯이고개를끄덕였다.
“또자고있겠지.”
“죄송합니다.그래도밤의여왕님이오셨다는것을안다면곧장일어나실겁니다.”
“그래야지.하지만그전에나는너에게볼일이있는데.”
“알고있습니다.우선자리를옮겨도될까요?”
릴리스는주변을가득채운주민들을훑어보고는고개를끄덕였다.
—-
대마법사를따라간릴리스는부유섬의중심으로들어갔다.
그곳에는부유섬에존재하는다른모든건물을합친것보다더큰성이자리하고있었다.
부유섬의주인,차토구아의성이었다.
평범한주민들에게는출입이엄격하게통제되는곳이지만,
“어서오십시오,대마법사님.”
대마법사가다가가자문은저항없이열렸다.
그는릴리스를성에서가장화려한응접실로안내했다.
응접실소파에마주앉은릴리스와대마법사.
“차라도한잔…”
“됐고,본론으로넘어가자고.”
릴리스는당당하게다리를꼬았다.
“뭐야?그여자애.”
“카리사말씀이신가요?”
“그래.왜우리앞에나타난거지?무슨목적이야?”
릴리스의말에대마법사는황급히손을내저었다.
“목적이라뇨!당치도않습니다.카리사는정말순수하게배움을목적으로아카데미에입학한겁니다.”
“하필내가있는차원,내가있는지구,내가있는아카데미에?”
“정말우연이었습니다.”
“그애의마법을봤어.이미차토구아와계약까지하고마법능력도그만하면됐잖아?아카데미에서뭘배우겠다고?”
“그…”
대마법사는부끄럽다는듯이고개를푹숙였다.
“…사실카리사그아이는제손녀딸입니다.”
“어쩐지. 어린나이의 인간이 그런마법적인능력이있다는 게 의아했는데,에이본네손녀딸이라면말이다르지.”
에이본이라불린남자는고개를끄덕였다.
“네.아시다시피저는하이퍼보리아의대마법사였죠.저의주인님의교단이핍박을당할때그분의은총으로이곳토성으로넘어올수있었습니다.”
에이본의이야기는이미알고있던릴리스였기에잠자코듣고만있었다.
“그때같이넘어온여성과결혼을하고가정을꾸렸습니다.참으로행복한가정이었습니다만…”
“다만?”
“…이곳부유섬은카이는참좋은곳입니다.주인님을믿는수많은종족들이함께살아가는곳이지요.”
“갑자기무슨말이야?”
“좋은곳이긴합니다만,저는손녀딸만큼은평범하게자라줬으면좋겠거든요.주인님을만나기전,제가그래왔던것처럼요.”
“그래서지구로보낸거다?”
“네,자기또래들과함께이리저리치이며평범한삶을살아가라는뜻에서그런뜻입니다.”
숨을한번고른에이본은고개를푹숙였다.
“결코그곳에밤의여왕께서계실줄알고간것이아닙니다.은카이의지배자이시자수면자이신저의주인,차토구아님의이름을걸고맹세하겠습니다.”
릴리스는아무말없이그저에이본을바라보기만했다.
그런릴리스의반응에에이본은식은땀을삐질삐질흘리고있었다.
자신이모시는분도생명체의한계를아득히초월한대단한분이시지만,눈앞의존재는그것조차초월한그야말로괴물이기때문이다.
마음만먹으면이부유섬을통째로토성의액체수소바다에빠뜨릴수도있으리라.
릴리스의침묵을분노내지짜증으로받아들인에이본의생각과는다르게,
‘…왜평범한삶을보내라고하는거지?그냥평생옆에다끼고살면되지않나?’
그저고민을하느라입을다문릴리스였다.
‘그렇게아끼고좋아한다면한치도곁에서떨어지고싶지않잖아?도대체왜보낸거야?’
마음같아서는평생아서를껴안고침대에서벗어나고싶지않은그녀였기에도통에이본의말을이해하지못하고있었다.
침묵이길어지자에이본은천천히고개를들었다.
“…밤의여왕님?”
에이본의의문섞인부름에릴리스는상념에서벗어났다.
“어,어?뭐라고했어?”
“결코밤의여왕님과만나라고보낸것이아니라고말씀드렸습니다.”
그말에릴리스는고개를끄덕였다.
“그래,알겠어.맹세까지했는데못믿을수는없지.”
“감사합니다.”
에이본은긴장감이풀려의자등받이에몸을뉘였다.
흐르는식은땀을훔치고있자니릴리스가말을걸었다.
“언제쯤만날수있어?”
“아,주인님을말씀하시는거라면지금당장이라도가능합니다.다만식사를하고얼마지나지않은시기라깊게잠들어계실겁니다.”
“깨우는데얼마나걸려?”
“대략…네시간정도로예상합니다.”
“…네시간.”
한시라도빨리아서의곁으로돌아가고싶었던릴리스는예상보다오래걸리는시간에표정이어두워졌다.
그런릴리스의반응에화들짝놀란에이본이손을휘저었다.
“세,세시간!세시간으로단축해보겠습니다!”
에이본은곧장연락마법으로담당자를불렀다.
-무슨일이십니까,마법사님.
-주인님께손님이오셨네.지금깨워야할것같은데.
-금방가겠습니다.
-가능한일찍깨워야 하네.밤의여왕님이찾아오셨다고말씀드리게.
-바,밤의여왕님이라면아우터갓기어드는혼돈의…?
-맞네. 반드시 세시간안에깨워야 하네.
-알겠습니다! 최대한빠르게해보죠.
“연락했습니다.여기서기다려주시지요.”
그말에릴리스는의자등받이에몸을뉘었다.
팔걸이를툭툭규칙적으로건드리는릴리스.
그런릴리스앞에서딱딱하게굳은정자세로자신의주인이일어나기만을기다리는에이본.
무거운침묵이이어지던그때,
“너결혼했다고했지.”
“에,예!결혼했습니다.”
“자식까지있고?”
“손녀딸까지있습니다.”
릴리스는잠시머뭇거리더니몸을앞으로기울였다.
“결혼하니어때,행복해?”
에이본은예상치못한질문에어리둥절한표정을지었지만,이내고개를끄덕였다.
“그럼요.행복합니다.”
오랜세월을살아왔음에도에이본은자신의아내만생각하면기분이좋아지는애처가였다.
“항상붙어있으면그…권태기라던가…생기지않아?너도차토구아의힘으로오래살아왔잖아.”
“그렇죠.차토구아님의은총으로이미본래수명의몇배를살아오고있고,결혼생활도오래되었죠.그나저나권태기라…”
에이본은의도를알수없는릴리스의질문에당황했지만,일단은답하기로했다.
“음…몇번오기도했습니다만,다양한방법을시도하면서벗어났습니다.”
“그다양한방법이뭔데?”
“그건…”
에이본은얼굴을붉혔고,릴리스는그런에이본을재촉했다.
“얼른말해봐.”
“그게…”
“수위조절안해도좋으니까,얼른.”
“이,이런주제는오히려릴리스님이잘아시지않습니까?”
눈앞의존재는다름아닌릴리스다.
경험만으로따지면이우주에서따라올자가없는존재인데,어째서이런걸자신에게물어본단말인가…
그런에이본의물음에릴리스가답하길,
“내가지금껏봐왔던건전부다정상적이지않은것들이었어.추악하고더러운욕망덩어리들의발현이었지.그러다보니순수한애정의행위가궁금해졌거든.그러니까얼른말해봐.”
눈을반짝이며재촉하는릴리스의태도에에이본은결국…
“이를테면다양한…그…체위를시도해본다거나…”
“응응,그리고?”
“그리고…가끔은컨셉을잡아서한다거나…”
“컨셉?”
“이를테면밧줄로…”
“밧줄?계속해봐.”
그뒤로세시간이지나고,
-그분께서일어나셨습니다.
-……
-…마법사님?
-……
-에이본대마법사님?
-…그래,일어나셨나?
-어,네.지금오시면될것같습니다.
-…알겠네.
-…괜찮으신건가요?뭔가좀지치신것같은데.
-그…아니네.얼른가겠네.
연락을마친에이본은자리에서엉거주춤일어났다.
“일어나셨답니다.만나러가시죠.”
“……”
릴리스는말없이자리에서일어나에이본을따라갔다.
그녀는무언가를진지하게고민하고있는것같았다.
에이본을따라복도를걸어가던릴리스가툭던지듯흘린한마디.
“밧줄…….”
[!– Slider main container –]